(경북도=경북온뉴스) 김승진 기자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2021년 제102주년 3.1절을 기념해 경북 출신 독립운동가 13명의 서훈이 확정되었고, 2020년 기념관에서 발굴 신청한 인물도 3명이 포함되었다고 발표했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2020년 경상북도와 안동시의 지원으로 전담인력을 채용하여 미포상 독립운동가 137명을 발굴·조사하여 58명을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하였다. 이 가운데 2021년 3.1절을 기념해 경북 출신 독립운동가 13명이 포상을 받았다.
이로써 경북(대구 포함)의 독립유공자는 2,341명(여성 25명)으로 늘어났다.
의병활동을 한 강병수(姜炳修, 1885~1972) 선생은 문경 출신으로, 1907년과 1908년 문경에서 이강년 의진에서 좌종사(坐從事)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건국포장에 추서하였다.
학생운동 관련 이상쾌(李相快, 1902~1971) 선생은 대구 출신으로, 1928년 7월 대구에서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ㄱ당”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었고 1930년 1월 대구에서 광주학생항일운동 관련으로 검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대통령표창에 추서하였다.
안동코뮤니스트그룹에서 활동한 이필(李鉍, 1909~?) 선생은 안동 출신으로, 1930년 안동에서 안동청년동맹 예안지부와 서울청년회 경성중앙청년동맹에 참여하였다. 1931년 3월 안상윤·권중택과 함께 안동코뮤니스트그룹을 조직하고 교양부 위원으로서 노동자·농민의 권익 향상과 신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하였다.
김성애(金聖愛, 1907~?) 선생은 안동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그녀는 1929년 안동청년동맹 위원으로 활동하고, 1933년 안동 코뮤니스트 그룹 산하 적색노동조합 여자부에 소속되어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녀의 공적을 인정하여 대통령표창에 추서하였다.
학생운동에 참여한 정기현(鄭璂鉉, 1921~1950) 선생은 고령 출신으로 1939년 7월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일본인 교사의 한국인 학생 차별 대우 등에 항의하여 일본인 교사를 습격하는 ‘왜관학생사건’을 주도하다 퇴학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대통령표창에 추서하였다.
여성 독립운동가 김귀임(金貴任, 1911~?) 선생은 대구 출신으로, 1930년 1월 경성여자상업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 동조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녀의 공적을 인정하여 대통령표창에 추서하였다.
3.1운동에 나선 이말용(李末用, 1898~?) 선생은 김천 출신으로, 1919년 4월 김천 개령면 동부동 뒷산에서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태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대통령표창에 추서하였다.
장순창(張順昌, 1901~?) 선생은 예천 출신으로, 1919년 4월 예천 용문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태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대통령표창에 추서하였다.
장정출(張正出, 1901~?) 선생은 예천 출신으로, 1919년 3월 예천 호명면 원곡동에서 장세환 등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태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대통령표창에 추서하였다.
미주방면에서 활동한 김성하(金晟河, 1877~1942) 선생은 포항 출신으로, 1909년부터 1922년까지 공립협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원,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평의원, 야키마(워싱턴 주의 한 도시)지방회 법무원, 총무, 간사 및 파출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13년부터 1941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대통령표창에 추서하였다.
법정사항일투쟁에 나섰던 김용충(金用忠, 1890~?) 선생은 포항 출신으로, 1918년 10월 제주도 좌면 하원리에서 김연일 등과 함께 법정사 항일운동에 참여해 활동하다가 1919년 2월 궐석재판으로 징역 1년6월을 받고, 1923년 2월 체포되어 4월 징역 1년6월로 재판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하였다.
일본방면 권목용(權穆龍, 1909~1950) 선생은 안동 출신으로, 1929년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오사카지부원으로 활동하면서 「檄」이라는 인쇄물을 출판하였으며, 4월 제2차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관서구역국(關西區域局) 오사카조직에 가입하여 당원 확대를 위해 노력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하였다.
강제징병을 거부한 김구하(金龜河, 1924~?) 선생은 구미 출신으로, 1944년 8월 충남 조치원역과 천안역 사이의 북행열차에서 조선총독부의 강제 공출과 조선인 청년에 대한 징병 등을 비판하고 9월 강제징병을 거부하다 체포되어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건국포장에 추서하였다.
이번에 서훈을 받은 13명의 독립유공자 가운데 기념관에서 포상신청을 한 1명(김구하)과 안동시·기념관이 함께 신청한 2명(권목용·이필)이 포함되었다. 기념관에서 발굴하여 서훈이 확정된 인물은 작년 순국선열의 날을 확정된 4명을 포함하여 총 7명이다.
그리고 경북 출신 가운데 여성 독립운동가 2명이 포함되어 더욱 뜻깊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포상 심사 중인 나머지 독립운동가들의 결과도 기다리고 있으며, 2021년에도 경북의 미포상 독립운동가들을 계속 발굴·조사하여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을 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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